형사소송 중 피고인이 반성문을 제출하는 경우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100%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다 읽어봅니다.
개인마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판사들은 사건마다 제출되는 모든 서류들을 다 읽어보게 됩니다.
혹시나 놓치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결론을 내리게 되지 않을까부터, 상급심에서 놓친 부분 때문에 자신의 판결이 파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그 걱정의 범위는 매우 넓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판사라는 직역에서부터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걱정까지 그 모든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반성문 한 장이라도 읽지 않고 던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변호사들이 주저리주저리 써 낸 서면보다는 당사자가 날 것의 말투로 적어 낸 반성문이 가끔 리프레시를 시켜준다는 말을 해 준 판사도 있었습니다.
약간 포인트가 다르지만, 어느 한 법관이 유죄 판결을 선고하여 교도소에 수감된 한 수형자가 그 법관에게 무려 10대가 지날 때까지 멸족시킬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저주를 퍼부으며 20여 장에 가까운 편지를 보내왔을 때에도 그 법관은 다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궁금하기도 하고(이것은 직업적인 특성의 발현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할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기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그 편지를 다 읽어보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반성문을 쓴 사람들은 꽤 많은 시간을 투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판사들이 그것을 읽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몇 분 안에 다 읽을 것이라고 예측되네요.
그렇다고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까먹는 것도 아닙니다.
식사 시간에 반성문을 읽은 소감을 나누는 경우도 꽤 보았습니다.
문제는 반성문으로 재판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느냐 일 것입니다.
반성문을 제출한다는 것은 범죄 사실을 자백하였다는 전제를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반성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법관에게 그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에서부터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판사가 재량에 의해 판단한 부분을 제도적으로 불복하여 상소하거나, 사후적으로 양형에 관한 비판적 논의가 가능할 뿐, 판사가 내린 판단을 부정하면서 사법 불신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판결을 내린 판사를 개인적으로 탓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겠죠.
특히나 사건 당사자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판사가 반성문도 읽지 않고 판결을 내린 것 같다는 음모론 같지도 않은 탓을 하면서 사법불신을 조장하는 변호사나 사무장들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고 보니, 비단 형사소송의 반성문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판사가 모든 법을 다 잘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제출한 서류조차 읽지 않고 판단할 것이라는 불신은 가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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